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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회선생신도비(李懷先生神道碑)
수지밝은미소
2007. 8. 30. 21:13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121호 (파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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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이회선생신도비(李懷先生神道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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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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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1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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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정 일 |
1984.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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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기 파주시 조리면 장곡리 산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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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
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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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자 |
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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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리 자 |
전주이씨익양군파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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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경기도 파주시 문화관광과 031-940-4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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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설명 | 전문설명 |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회(1488∼1552) 선생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회 선생은 성종의 여덟 번째 아들로 아홉살 때인 연산군 2년(1496) 익양군으로 봉하여졌다. 그후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가 계속되자 문밖 출입을 하지 않다가 연산군 12년(1506)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원종공신이 되었다. 종부시제조, 종친부유사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특히 충효덕행의 으뜸으로 명성이 높았다.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는 비는 넓직하고 네모진 받침 위에 비몸과 머릿돌을 하나의 돌로 만들어 세워 놓았다. 비몸의 앞면 윗부분에 비명칭을 새기고, 그 아래와 뒷면에 비문을 새겼다. 머릿돌은 두 마리의 용을 대칭적으로 조각하였는데 용비늘과 구름 등의 묘사가 매우 섬세하다.
선조 20년(1587)에 세운 비로, 비문은 좌의정 김귀영이 짓고, 명필 한호가 글씨를 썼으며, 도승지 김응남이 비명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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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조선(朝鮮) 명신(名臣)인 이회 선생의 업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신도비이다. 선생은 성종(成宗)의 제8왕자로 성종 19년(1488) 7월 1일 숙의홍씨(淑儀洪氏) 몸에서 태어나 9세 때 익양군(益陽君)으로 봉군되었다.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지용(智勇)이 뛰어났으며 오위부도총관(五衛府都摠官)을 거쳐서 문소전(文昭殿) 연은전(延恩殿) 종부시(宗簿寺)의 제조(提調)와 종친부(宗親府) 유사(有司)담당관의 벼슬을 지냈으며 충효덕행이 지대하여 조야에 명성이 으뜸가는 원종공신(原從功臣)이었다. 비문은 좌상(左相) 김귀영(金貴榮)이 글을 짓고 주부(主簿) 한호(漢濩)가 글씨를 썼으며 도승지(都承旨) 김응남(金應南)이 전액(篆額)을 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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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마고개 청소년사랑방
메모 : 언제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후손으로서 왠지 뿌듯~ ^^